com이동훈 기자 dhlee@donga.
호남선 열차의 그 차림 그대로였다.곳곳에 유리창이 깨진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.
아직 새마을호는 나오기 전이었지만 당시로선 최고 등급 열차였다.[변양균 남기고 싶은 이야기] 진영을 넘어 미래를 그리다 〈21〉 학창 시절 ‘호남의 기억 변양균 전 기획예산처 장관 학창 시절 잊을 수 없는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.유세가 끝나자 김 후보 얼굴을 보려는 인파가 출구 쪽으로 몰리며 압사 사고가 발생했다.
예술가는 춥고 배고프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절이었다.학교 수업이 제대로 이뤄질 수가 없었다.
그 사람은 굉장히 당황스러워하며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.
단지 철도 건설의 지지부진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위를 달리는 열차의 편수나 질에서도 인구 비례를 훨씬 넘는 차별을 보인다.사망자가 두 명이 나오고 부상자도 속출했다.
대학 담장 옆에 있던 하숙집에서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 일이다.미대 진학에 대해 부모의 반대가 워낙 심했다.
호남선 여행의 강렬한 체험은 나에게 세상을 보는 눈을 뜨게 해줬다.내 글의 제목은 ‘농공병진의 경제전망이었다.